글결 서재

좋은 아침입니다 · 8화

60년,바람속에 깊어진 나무처름

피에트로강 · 2026년 11월 5일 · 약 3분

60년, 바람 속에 깊어진 나무처럼

​인생의 계절이 가만히 흘러 어느덧 일흔의 고개 너머에 섰습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살아온 세월만큼의 깊은 골이 패였지만, 중학교 교실 창밖으로 보이던 푸른 하늘과 까까머리 시절의 설렘은 여전히 눈앞에 선합니다.

​열넷, 열다섯. 가방을 둘러메고 먼지를 일으키며 함께 달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2박 3일의 여행길에 나섭니다. 가방 속에 챙긴 알약 몇 알과 둔해진 걸음걸이가 서로의 세월을 말해주지만, 찻안에서 시작된 이야기꽃은 금세 육십 년 전, 그 시절의 정겨운 소란함으로 돌아갑니다.

​돌아보면 육십 년이라는 세월은 참으로 길고도 아득합니다. 저마다 다른 삶의 무대에서 가장으로, 사회인으로 쉼 없이 달리며 눈물겨운 애환을 겪어냈습니다. 때로는 사는 게 바빠 서로를 잊고 지낸 날도 있었고, 세상의 비바람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 외로운 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삶의 커다란 산맥들을 다 넘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육십 년을 함께 걸어온 친구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친구는 ‘나의 가장 솔직했던 시절을 기억해 주는 거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직함이나 재산, 혹은 번듯한 모습으로 기억할지 몰라도, 중학교 친구들은 나의 가장 초라하고 어리숙했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들 앞에 서면 잘난 척할 필요도, 무거운 가식의 옷을 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야, 아무개야"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어깨를 누르던 세월의 무게가 한순간에 녹아내립니다.

​또한, 친구는 ‘말없이 젖어드는 아침 안개 같은 위로’입니다.

이제는 거창한 포부나 자랑거리를 나눌 나이가 아닙니다. 자식 걱정, 시린 무릎 걱정,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을 소주 한 잔에 털어놓으며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고개가 끄덕여지도록 들어주는 것.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다" 하는 그 묵직한 공감 하나가 그 어떤 명약보다 가슴을 따뜻하게 메워줍니다.

​육십 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커다란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로 숲을 이루었습니다. 세풍(世風)에 가지는 다소 가늘어지고 잎은 떨어졌을지언정,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는 단단히 얽혀 서로를 받쳐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행지의 밤, 푹 익은 이야기 속에서 불빛을 등지고 웃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살아온 길이 달랐고 성격도 제각각이지만, 여전히 내 곁에서 함께 늙어가고 같은 추억을 나누어 가진 이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집니다.

​어쩌면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참된 행복이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이처럼 계절의 변화를 함께 바라보며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물을 수 있는 동무가 곁에 있다는 것 아닐까요.

​계절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켜주는 양지바른 길목처럼, 60년 친구는 내 삶에 가장 따뜻하고 눈부신 축복이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도 그저 지금처럼만, 서로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추며 정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egOKv9uKIR/?exln=azdib3M5bDRrN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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