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단편소설 · 청소년·성인

천년의 미소

앙코르와트 압살라

오른쪽 화살표나 화면을 넘겨 시작하세요

글 리안최 · 사진 삽화 AI 생성

이야기를 시작하며

The Smile of a Thousand Years

역사 로맨스 · 미스터리 · 환생의 여운

천 년 전 앙코르의 조각가와 궁정 무희, 그리고 2010년 씨엠립에서 만난 두 사람. 서쪽 회랑 데바타의 미소에 남은 작은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

차례

돌이 기억하는 것 장면 삽화

돌이 기억하는 것

프롤로그 · 앙코르 왕국, 12세기 어느 우기

비가 그친 뒤에도 숲은 울고 있었다.

넓은 잎마다 빗방울이 매달려 있었고, 잎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붉은 흙 위에 작은 구멍을 냈다. 젖은 흙과 풀 냄새 사이로 돌가루 특유의 메마른 향이 섞여 들었다.

젊은 조각가 소카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 앞에는 한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데바타 부조. 이마를 따라 흘러내리는 머리 장식, 살짝 올라간 입꼬리, 웃는 듯 웃지 않는 입술.

그는 마지막으로 입가를 다듬었다. 정 끝이 사암에 닿을 때마다 맑은 소리가 좁은 작업장에 울렸다.

탕. 탕. 탕.

그 얼굴은 사라의 얼굴이었다. 궁정에서 춤을 추는 여인, 그가 사랑하는 사람. 왕이 바뀌고, 사람들이 늙고, 숲이 사원을 삼켜도 돌은 남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이제 끝났나요?"

뒤에서 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카는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조금만 더."

"당신은 언제나 조금만 더라고 말해요."

사라는 젖은 땅을 맨발로 밟으며 다가왔다. 비에 젖은 천 냄새와 은은한 플루메리아 꽃향기가 따라왔다. 그녀는 자신을 닮은 데바타를 한참 바라보았다.

"아름답네요."

"당신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어."

사라는 데바타의 입가에 손끝을 가져갔다. 차가운 돌의 감촉에 그녀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그런데 이상해요. 이 여자는 영원히 웃고 있겠네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웃고 있을 수는 없어요."

멀리서 천둥이 울렸다. 소카는 자신이 만든 미소를 바라보았다. 완벽했다. 누구도 그 안에 숨은 슬픔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때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는 일과,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도록 허락하는 일이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천 년이 흐른 뒤에도 그 미소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앞에 다시 서게 될 것이었다.

낯선 미소 장면 삽화

낯선 미소

제1장 · 씨엠립, 2010년 7월

리안이 앙코르와트에 도착했을 때, 새벽 안개는 아직 연못 위에 걸려 있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다섯 개의 탑이 회색 윤곽을 드러냈다. 수면에는 뒤집힌 탑의 그림자가 흔들렸고, 연꽃 잎에 맺힌 물방울은 작은 유리구슬처럼 빛났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무거웠고, 이마의 땀이 눈썹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물네 살의 고고학 전공생. 한국에서 책과 사진으로만 만나던 사원이 눈앞에 있었다. 예상보다 거대했고, 예상보다 조용했다. 그는 한국 대학이 참여하는 앙코르 복원 사업의 보조 연구원으로 이곳에 왔다. 앞으로 석 달, 석재 하나하나의 번호를 매기고 손상 상태를 기록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첫 주, 보존팀을 따라 서쪽 회랑의 복원 구역에 들어갔다. 비계가 세워진 벽면 한구석, 관람로에서 떨어진 자리에 한 여인상이 서 있었다.

데바타. 앙코르와트 벽마다 수백, 수천 명이 새겨져 있지만 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머리 장식도, 목걸이도, 손에 든 꽃도 저마다 달랐다. 리안은 그중 한 얼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데바타 부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가만 빼고.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 웃음이라 부르기엔 너무 희미했고, 무표정이라 하기엔 어딘가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를 알아본 사람처럼.

그는 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각도를 바꾸어 또 한 장. 빛이 기울면 미소는 사라졌고, 빛이 다시 닿으면 돌아왔다.

그때였다. 회랑의 어둠 속에서 돌가루 냄새가 짙어졌다. 아주 잠깐, 망치와 정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탕.

리안은 눈을 감았다 떴다. 소리는 사라졌다. 눈앞에는 여전히 데바타가 서 있었다.

그날 밤, 선풍기가 느리게 도는 숙소의 천장을 보며 그는 잠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한 여인이 말했다.

내 얼굴을 기억해 줘요.

돌을 깎는 손 장면 삽화

돌을 깎는 손

제2장 · 앙코르 왕국, 12세기 · 수리야바르만 왕의 시대

조각가에게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재료였다.

돌은 화를 내지 않았고 떠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정으로 다듬은 만큼의 형상을 받아들였고, 잘못 깎으면 그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겼다. 사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그 무렵 왕국은 거대한 사원을 짓고 있었다. 비슈누 신에게 바치는 산, 우주의 중심을 땅 위에 옮겨 놓은 건물. 수천 명의 석공과 조각가가 벽마다 신과 영웅과 압살라를 새겼다. 소카는 그중 얼굴을 맡은 사람이었다.

사라는 궁정 무용수였다. 압살라 춤은 천상의 무희를 땅 위에서 흉내 내는 의례였다. 손가락 끝을 꽃잎처럼 젖히고, 발목을 돌려 향을 피운 공기를 가르는 동작. 그녀는 그 동작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았고, 그래서 그 바깥도 알았다.

음악이 멈추면 사라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의례가 끝나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 그녀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비가 내리면 향과 장식 냄새가 씻겨 나가고, 세상이 잠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어느 날 사라가 작업장에 왔다.

"오늘도 제 얼굴을 깎고 있나요?"

"데바타는 늙지 않으니까."

"돌도 늙어요. 사람보다 천천히 늙을 뿐이죠."

그녀는 소카 옆에 앉아 돌가루가 묻은 그의 손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렸다. 거칠고 따뜻한 손이었다. 손등의 작은 상처를 엄지로 쓸었다.

"이 손으로 나를 만들었군요. 그런데 기억은 왜 해야 하죠?"

"언젠가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사라의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

"잃을까 봐 두려운 건 알아요. 하지만 두려워서 붙잡아 두면, 붙잡힌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죠?"

소카는 그녀의 손을 놓고 다시 정을 들었다. 탕. 탕. 돌은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라는 그의 손길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를 피한 사원 장면 삽화

비를 피한 사원

제3장 · 씨엠립 외곽 마을, 2010년 7월

일요일, 리안은 혼자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시내 밖으로 나갔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 사원의 벽화를 보고 싶다는 한국인 교수의 부탁 때문이었다. 길은 붉었고 논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반쯤 갔을 때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 없이 가까운 사원 문 앞에 그를 내려 주었다. 흙탕물이 튀었다. 열기를 머금은 땅에 빗방울이 닿자 뜨거운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는 소리를 들었다. 빗소리 사이로 작은 북이 일정하게 울렸다. 둥, 둥, 따닥.

본당 앞 마루에서 열두어 명의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손끝을 꽃잎처럼 젖히고 발목을 돌리며 느리게 팔을 펼치고 있었다. 앞에는 한 여인이 서서 한 동작씩 보여 주고 있었다.

"손목 말고 팔꿈치부터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손끝이 제일 나중에 도착해요."

한국어였다. 서툴지만 따뜻한 억양이었다. 리안이 놀라 우두커니 서 있자 그녀가 돌아보았다.

짙은 갈색 피부, 비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은색 펜던트. 입술 아래쪽 왼편에는 쌀알만 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웃었다.

"비 맞았네요. 들어와요. 사원은 비 피하는 사람을 받는 곳이에요."

그녀의 이름은 소반나. 시엠립의 대학에서 문화유산 관리를 공부하는 학생이자, 주말마다 이 마을 아이들에게 압살라 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한국어는 대학 교양 수업에서 배웠다고 했다.

노승이 사탕수수 즙을 내왔다. 갓 짠 즙은 차갑고 풀 냄새가 났으며, 한 모금 마시자 혀끝에 투명한 단맛이 퍼졌다.

"어디에서 왔어요?" 노승이 소반나를 통해 물었다. "무슨 일로 이 나라에?"

"돌을 보러 왔습니다." 리안이 대답했다. "그 미소를 짓는 돌을요."

소반나가 통역하자 노승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했다.

"돌이 웃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이 웃는 거라고 하세요."

비가 그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리안은 처마 아래에서 아이들의 춤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눈이 자꾸 소반나의 입가로 갔다. 웃을 때 아주 조금 올라가는, 왼쪽 입꼬리 아래의 작은 점으로.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우연이다. 사람은 가끔 처음 보는 얼굴에서도 익숙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원을 나서는 길에 그는 처음으로 비 냄새가 좋다고 생각했다.

네 개의 회랑 장면 삽화

네 개의 회랑

제4장 · 앙코르와트 제3회랑, 2010년 7월

다음 주 월요일, 소반나가 앙코르와트 정문 앞에서 리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실습 안내 자격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복원 일은 돌을 보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돌이 하는 이야기를 모르면 반만 보는 거예요. 오늘은 이야기를 읽어 드릴게요."

사원의 가장 바깥, 3층 회랑의 네 면 벽에는 길이가 모두 합쳐 육백 미터에 가까운 부조가 이어진다. 두 사람은 서쪽 회랑에서 시작했다. 한낮의 열기가 바깥을 달구고 있었지만 회랑 안쪽 공기는 서늘했다. 손바닥을 벽에 대자 수백 년 묵은 돌의 매끈한 냉기가 올라왔다.

서쪽 벽에는 두 개의 전쟁이 새겨져 있다. 한쪽은 코끼리와 전차와 수천 보병이 맞부딪치는 쿠룩셰트라의 싸움, 한쪽은 원숭이 군대가 열 개의 머리를 가진 라바나의 성을 치는 랑카의 싸움이었다. "라마가 아내 시타를 되찾으려는 이야기예요." 소반나가 손끝으로 허공에 선을 그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전쟁까지 하죠. 그런데 이 이야기에도 끝에 이상한 장면이 있어요. 시타가 돌아와도, 사람들은 의심해요."

남쪽 벽에서 두 사람은 오래 걸음을 멈췄다. 위쪽은 행렬이었다. 수리야바르만 왕이 코끼리 위에 앉아 신하와 군대를 거느리고 나아가는 모습. 아래쪽은 심판이었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의 신 야마 앞에 서고, 한쪽은 천상으로 오르고 한쪽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여기 보세요. 지옥 칸에서 제일 많이 벌 받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도둑이요?"

"남의 것을 빼앗은 사람이요. 땅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리안은 그 말을 오래 곱씹었다. 지옥에서 벌 받는 사람들의 표정은 놀랍게도 하나하나 달랐다. 두려움, 체념, 억울함. 이 벽을 새긴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동쪽 벽 앞에서 소반나가 속도를 늦추었다. 길이 오십 미터에 가까운 단일 장면. 한가운데 비슈누가 서 있고, 왼쪽에는 이마를 찌푸린 아수라 여든여덟, 오른쪽에는 신 아흔둘이 거대한 뱀 바수키의 몸통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다.

"유해교반. 우유 바다 휘젓기예요. 불사의 감로수를 얻으려고 신과 악마가 줄다리기를 하는 거죠. 한쪽이 힘껏 당기면 다른 쪽이 놓치고, 놓치면 바다는 뒤집혀요. 서로 같은 속도로 당기고 풀어야만 돌아가요."

"사랑이랑 비슷하네요."

농담처럼 나온 말이었다. 소반나가 웃음을 거두고 그를 보았다.

"더 이상한 건 그다음이에요. 바다를 오래 저으면 감로수가 나오기 전에 독이 먼저 올라와요. 세상이 다 녹을 만큼 강한 독. 그 독을 시바 신이 혼자 삼켜서 목이 푸르게 변했대요."

"왜 독이 먼저예요?"

"원하는 걸 얻으려는 사람 안에서 먼저 나오는 게 독이니까요. 집착, 불안, 소유욕."

마지막 북쪽 벽에는 크리슈나가 악마 바나와 싸우는 장면과 신들과 아수라의 대전이 있었다. 거대한 싸움의 한복판, 칼과 창이 부딪히는 소란 속에서 벽 가장자리에 서 있는 데바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꽃을 든 채 싸움 쪽을 보지도 않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 리안은 숨을 멈추었다.

"저 얼굴……."

"왜요?"

"그냥…… 처음 만난 데바타와 닮았어요."

소반나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앙코르와트의 데바타는 모두 달라요. 그런데 닮아 보이는 건, 보는 사람 마음이 닮은 걸 찾기 때문일 거예요."

회랑을 한 바퀴 돌고 나왔을 때 해가 기울어 있었다. 한낮의 열기는 가라앉았고, 해자 위로 박쥐 떼가 날아올랐다. 리안은 그날 처음으로 돌에서 신이 아니라 사람을 보았다.

머리카락에 남은 향기

제5장 · 씨엠립 시내에서 국도 6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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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가 떠나려는 이유

제6장 · 앙코르 왕국,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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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 바켕의 석양

제7장 · 프놈 바켕, 2010년 8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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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얼굴들

제8장 · 바이욘과 타 프롬,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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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웃는 여인

제9장 · 앙코르 왕국,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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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의 작은 흔적

제10장 · 씨엠립, 2010년 8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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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돌의 문

제11장 · 반테아이 스레이,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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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대답하지 않는다

제12장 · 앙코르와트,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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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뒤에도

에필로그 · 씨엠립, 2011년 4월 · 크메르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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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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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